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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노트

잔혹함에 대하여(애덤 모턴)

by Say_Young 2023. 2. 26.

 

1. 책의 평균적인 독자들과 대다수의 악행자 사이에는 상상하지 못할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세상의 대부분은 오히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나는 점을 논증해 보일 것이다. 

 

2. 무엇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악이라는 관념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강력한 논거가 있다. 악이라는 끔찍한 관념을 가정하는 사고는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반박의 요지다. 먼저 주장을 따라가보자. 

''이라는 단어는 증오, 무시, 이해 불가의 어휘군에 속한다. 어떤 행동이나 사람이 정상적인 도덕의 설명의 틀에 맞출 없을 만큼 나쁠 악하다고 한다. 

...

그런데 만일 일상의 도덕적이거나 도덕적인 동기와 악행의 동기가 그토록 다르다면, 이런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와 아주 다른 존재일 것이다. 그들은 악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끔찍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우리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정신이 작동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들이 없다면 세계는 훨씬 안전하고 끔찍한 곳이 되리라고 설명하게 된다. 일종의 도덕적 편집증에 빠진다. 

편집증은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중 가장 극적인 결과는 보복, 마녀사냥, 방어적이거나 선제적인 잔혹 행위를 허가하는 경우다. 우리에게는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는 된다는 사회적, 정서적 장벽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장벽은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범주화하면, 그러한 장벽들을 넘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결국에는 보통 우리가 꺼리는 일들을 행할 수도 있게 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악을 행할 있는 것이다. 

악의 개념을 가정하는 생각에는 이보다 미묘한 위험들이 존재한다. 세계의 불행 상당수는 우리가 쉽게 악으로 분류할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무분별, 무신경, 무지에서 발생한다. 상당수의 불행은 증오나 사디즘에 빠진 소수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신중함이나 상상력이 부족한 다수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

진정한 위험은 이것이다. 악의 개념을 가정하고 사고하다보면 어느새 악인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질 있다. 악인은 피해자가 그런 취급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가치 없는 쓰레기나 열등한 존재 또는 위험할 만큼 이질적인 대상이라 여긴다. 사실 그는 피해자가 악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가 악의 개념을 가정하는 사고는, 각별히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잔혹 행위의 공범자로 만들지도 모른다. 

 

 3. 세상의 난폭함과 남들보다 위험한 사람들의 심리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와 동시에 편집증적 함정, 다시 말해서 보통사람과는 매우 다른 동기를 갖는 특별한 부류의 소름 끼치는 사람이 존재하며 바로 그들의 행동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들의 핵심이라 생각하게 되는 함정을 피하는 방법을 어떻게 찾을 있을까? 

(1) 이해력

악에 대해 깨우침을 주는 이론은 악행자의 동기를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묘사하는 대신에 악한 행동을 하는 동기의 다양성, 그리고 정상적인 인간의 삶에서 작동하는 동기와 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 사이의 다양한 유사성을 이해하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필요한 자산을 확장해주어야 한다.

(2) 평범성

악의 이론은 다수의 공포, 홀로코스트같이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공포는 다양한 인물들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과 배치되어서는 된다. 

...거대한 규모의 전체주의적인 악은 평범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악에 동참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특별한 증오나 가학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거의 의심할 나위가 없다. 

(3) 성찰성

악의 이론은 우리가 어떻게 악으로 보일 있는지를 이해하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

부유한 서구 사회의 구성원들, 그중에서도 미국인은 자신들의 중요한 동기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비난받을 만한 것으로 보일 있다는 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상당한 수준의 이해 또는 상상을 필요로 하는 도덕적 관념의 변화가 일어난다. 훌륭한 악의 이론은 이러한 변화에 도움을 있어야 한다. 

 

4. 여기서는 먼저 잘못과 대비되는 악의 기본 특징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우리는 극도로 악한 행동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감을 갖는다. 

(2) 악은 타인에게 죽음, 고통, 모욕을 가하는 잔혹성으로 집중된다. 

(3) 악의 피해자는 대개 악이 이해 불가능한 것이라는 관점을 갖는다. 

 

5. 우리는 나쁘지만 악한 행동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6. 어떤 종류의 동기에 관해 상상하기를 꺼리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가지 이유는 자아 존중감이다. 

...

악의 동기를 상상하는 것을 꺼리는 미묘한 이유는 설명의 사회적 용도와 관련된다. ... 악한 행동을 하는 능력은 되도록 연습을 하는 편이 낫다.

...

우리가 악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꺼리는 번째 이유는 악을 이해함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혐오감이 약화될까 두려워한다는 있다. 다시 말해서 가해자를 용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착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이해와 비난은 전적으로 양립 가능하다. 

 

7. 최근 몇십 년간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거나 사회적으로 일탈하게 하는 요인들을 연구해왔으며, 의미 있는 발견을 냈다. 연구를 악의 심리학이라고 표현하면 잘못일 것이다. 연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위협일 있는지, 또는 위협이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심리학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러고 나서 악한 행동을 특정짓는 악의 장벽 이론을 제시할 텐데, 그것은 해로운 행동을 금지하는, 장벽이 지닌 회피 방법을 찾아내는 정신적 과정을 다룬다. 장벽 이론은 철학이다. 


8.
폭력적인 개인은 그들 자신을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인격에 문제가 많으면 보통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스러워한다는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각이지만, 사실 폭력적인 사람들에 대한 증거에 따르면 미묘한 특정을 띠고 있다. 폭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태도에 대해 믿음을 축소하기보다는 과장하기 쉽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믿음은 종종 사실과 크게 다르다. 폭력적인 강간범은 자신이 성적인 기술의 달인이라고 믿고, 폭력적인 아버지들은 자식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믿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자존감은 그들의 행동이 부인하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의 자존감은 부풀려져 있으며 약하다. '취약한 자기중심주의자' 사실 폭력적인 개인들 사이에 매우 흔하다. 

 

9. 폭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기만, 절도 비탄 또한 위협이 된다. 모든 방법으로 사람은 신체적 공격을 가하지 않고 두려움을 야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얻을 있는 잠재적 이익은 고통을 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우리의 성향을 통해 저지된다. 그런데 고통을 야기하는 행위를 훨씬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소시오패스다. 

 

10. 소시오패스들은 타인의 행복에 공감하는 즐거움, 타인의 슬픔에 대한 당혹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대한 후회 같은 감정들이 주로 부족하다. 나는 공감 능력의 결핍으로 소시오패스의 조건을 정의할 것이다. 조건은 폭력적인 사람의 프로필과는 확실히 달라야 한다. 

...

그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거나 모욕을 주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이 목적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나 모욕을 주었다고 해도 그저 무관심할 뿐이다. (폭력적인 사람이 소시오패스보다 피해자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폭력적인 사람의 이미지가 고의적 공격이라면, 소시오패스의 이미지는 냉정하게 계산된 조작이다. 

...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징후이지 질병이 아니므로 우리는 원인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는 적겠지만 폭력적 성향은 없으면서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약한 소시오패스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

소시오패스들은 인간 행위의 상당수가 단지 교류를 목적으로 하거나 남을 돕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선뜻 납득하지 못한다. 

 

11. 가능한 행동들에 여과 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해로운 행동을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이유가 중요하다. 고려 대상이 되면 되는 행동을 막지 않은 것이 바로 악한 동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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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우리가 악한 행동에 대해 번째로 시도하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악한 행동이란 예측되는 결과가 타인의 고통이나 굴욕을 수반하는 행동이며, 실행이 고려되면 되는 행동이다. 우리 정신에는 악을 막는 장벽이 내재해야 한다. 

...

내가 제안하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신이 선택할 행동들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위해와 모욕을 금지하는 의무적 장벽을 회피할 있는 전략 또는 학습된 절차를 통해 행동을 결정할 경우, 행동은 악하다.

 

12. 그러나 지금의 쟁점은 어느 것이 나쁜가가 아니라, 어느 것이 악한가라는 문제다. 만약 ''이라는 표지가 우리의 반감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서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특정 개인에게 고통, 죽음, 모욕을 주지 않은 부당함에 대해서는 표지를 부여해서는 된다. 

 

13. 장벽 이론은 악한 행동에 대한 이론이다. 행동과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누구나 악한 행동을 있고 가장 끔찍한 사람들의 행동조차 전혀 악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점이 행동에서 사람으로 미끄러지는 가장 흔한 사례는 악한 행동을 많이 저지른 사람을 악하다고 규정하는 경우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보다 깊은 차원의 연관성이 있다. 장벽 이론에 따르면, 악한 행동은 잔혹 행위를 막는 장벽을 피하는 체계적인 방법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또한 행동을 선택하는 방법이나 자신을 속이는 방법 같은 성격의 근본적 특질에서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악한 사람이란 장벽과 협상하는 방법이 성격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합당한 관점일 것이다. 

악한 성격은 가지로 명확히 구분된다. 첫째로 잔혹 행위를 막는 정상적 장벽을 아예 갖지 않은 사람들 있다. 극단적으로는 한때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던 폭력적 성향의 소시오패스를 있다. 둘째로는 장벽을 피할 방법을 익히는 학습 과정을 거친 필요할 때마다 이를 활용할 있는 사람들 있다. 폭력화 모델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종류는 장벽을 무력화하는 문화적 토양에서 신념 체계가 형성된 사람들이다. 잔혹 행위를 매우 쉽게 용인하는 인종적 편견과 도덕적 믿음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종류는 위반을 용이하게 있는 신념 체계와 사고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우월성이나 독자적으로 창안한 이데올리기에 대한 위험한 환상이 작용한다. 

 

14. 사회는 개인에게 어떤 역할을 제공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의 실상을 외면하도록 돕는가? 그다음으로는 우리가 잔혹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에 대해 이해해야 부분이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잔혹 행위를 막는 장벽을 피했는가? 사실상 질문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 있다. 단지 악한 욕망에 대해서만 의문을 품어서는 된다. 그보다 깊은 , 특정한 욕망의 작동을 막아야 하는 장벽이 무력화되는 지점을 살펴봐야 한다. 

 

15. 20세기에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 시스템이 함께 등장했다. 근대적 국가 조직과, 유사 과학적이고 유사 종교적인 이데올로기 바로 그것이다. 

...

한나 아렌트는 주제에 관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책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대체로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머리가 좋은 친위대 장교들의 혐오감 완화 기술에 대해 설명한다.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 살인자들은 '내가 사람들한테 얼마나 끔찍한 짓을 했는가!'라고 말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할 있다. 내가 의무를 따르기 위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보아야만 했는가, 얼마나 무거운 직무가 어깨에 지워졌던가!"

...

전체주의 체제의 잔혹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특징은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인적 양심의 종속이다. 

 

16. 잔혹 행위는 실제다. 악한 행동은 실제고, 실제 악이다. 잔혹 행위라는 악몽은 단순히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머릿속에 있는 악의 이미지는 복잡한 방식으로 실제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악의 이미지는 때로 실제가 일어나게 하고, 때로 실제의 본성을 오도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이미지들은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 

이미지들의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는 모든 악행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이는 테러리스트가 자신을 애국자 또는 압제에 대항한 투사라고 여기거나, 자기만족적인 권력자가 스스로를 질서유지의 옹호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행동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보통 다양한 성격이 결합해 잔혹한 행동을 야기한다는 점을 무시한다. 억압당하는 사람들은 권력자를 냉혹한 소시오패스라고 여기는데, 이로써 권력자가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처하고 무감각한 관리자와 가학적 폭력배를 상대하는 쓸모가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권력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분별없이 폭력적이며, 명분이 없다면 연쇄살인범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테러리즘에도 이론가와 조직자 활동가로 이루어진 조합이 필요하며, 테러리스트들도 상대편의 인간성을 의식하지 않기 위한 제각기 다른 전략을 가졌다는 점을 잊고 있다. 

이런 모든 경우, 그리고 이상의 훨씬 많은 경우들이 우리 내부에서 어떤 상상력의 나태함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전형적인 공포, 허구적인 악당, 극심한 사악함의 면에서 악을 이해하는 편을 선호한다. 

 

17. 잔혹 행위가 일어나면 무엇보다 사고와 감정이라는 가지 점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가능하며, 공포를 인정하면서도 삶을 지탱해갈 있는 올바른 태도를 찾는 일은 우리의 의무다. 

 

18. 악한 행동을 상상할 때는 욕망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삼으면 된다. 내가 줄곧 주장해왔듯, 악을 일으키는 전형적 요인은 어떤 특별한 욕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한 행동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욕망과 매우 닮았을 수도 있는 행위자의 욕망이 과연 어떤 방식을 통해 우리의 행동과는 아주 다른 행동으로 전환되는지를 상상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런 상상의 방법을 배울 있을 것이다. 

비도덕적 행동의 이해에 관한 가지 쉬운 사례를 살펴보자. 나는 로널드 마일로의 <비도덕성> 나오는 비도덕적 행동의 분류법을 사용할 것이다. 전체 목록은 도착적 사악함, 도덕적 나태함, 무도덕성, 선호적 사악함, 도덕적 무관심, 도덕적 나약함으로 구성되는데, 나는 그중에서 도착적 사악함, 선호적 사악함, 도덕적 무관심만을 다루려 한다.

도착적 사악함은 잘못된 도덕 원칙을 받아들이는 경우다. 확신에 이데올로기적 인종주의는 도착적 사악함의 중요한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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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로의 다른 범주는 선호적 사악함이다. 이것은 도덕적이던 사람이 사고 과정에서 도덕성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발생한다. 극단적 사례로, 적의 항복을 받을 만한 상황인데도 수많은 적군의 죽음을 초래할 군사작전을 채택하는 장군을 있다. ... 우리 삶에 가까운 문제로 옮겨가본다면, 현실적이고 쉽게 상상할 있는 선호적 사악함의 사례들이 떠오를 것이다. 어떤 학자는 형편없는 책을 비평하면서 반대 파벌의 인물이 썼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심한 악평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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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로의 범주에서 마지막 항목인 도덕적 무관심은 자신이 해야 일을 아주 알면서도 행동할 때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경우를 말한다. 개별적 행동만을 두고 보자면 도덕적 무관심과 선호적 사악함을 명확히 구별할 없다. 그러나 전체적 행동유형을 결정짓는 인물의 특성에 주목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과 의무에 충분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19. 이전 장에서 우리는 일상의 잘못된 행동에서 악으로 상상력을 옮겨갈 있는 가지 방법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가지는 동기 자체가 아니라 악행자가 자신의 동기를 어떤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 다른 방법은 위험인물의 깨지기 쉬운 자존감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이는 폭력적 인물의 불안정한 자신감, 다른 사람을 힘으로 굴복시킴으로써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다. 번째 방법은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악하게 보일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다. 

 

20. 깨지기 쉬운 자존감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는 그런 자존감이 지극히 일상적인 잘못에서 장벽 회피의 기능을 하리란 점을 충분히 상상할 있으며, 훨씬 심각한 잘못의 경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존감을 유지하고,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며, 실제로 자기 가치가 타인들에게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려 하는 보편적 욕구를 갖는다. 그렇지만 정작 어떤 종류의 가치가 욕구를 충족시킬지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사랑받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며, 누군가는 도덕적 인물로서 존경받기를 바란다. 어떤 가치든 우리는 흔히 그에 대한 상반된 믿음을 동시에 갖는다. 때로는 가치에서 자신이 완벽하다는 환상이 믿음으로 기능하고, 때로는 자신이 철저히 무가치하다는 두려움이 믿음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라도 이러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신의 자리에 오르는 것과 개똥 같은 신세로 전락하는 사이의 긴장 상태가 유난히 불안정하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극단으로 치달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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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다른 사람의 굴욕을 통해 자존감이 강화될까? 이것은 인류의 매력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특징 하나다. 그러나 여기에도 나름의 분별이 있다. 불가능한 기준에 자신을 견주기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뒤처지지만 않으면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21. 화해는 용서가 아니다. 화해의 목표는 그보다 심층적이다. 누군가의 행동을 용서한다는 것인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겠다는 뜻이다. 이상적인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있고 나서야 이루어진다. 잘못을 사람이 먼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것처럼 변화해야 한다. 그런 참회가 있은 뒤에야 사람의 과거 모습을 잊고 다시 그와 어울릴 있다. 말하자면 '용서하고 잊기', 또는 현실적으로 말해서 용서하고 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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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는 다르다. 화해는 행위가 아닌 사람과 하는 것이며, 행위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눈감아주는 것도 아니다. 사람과 화해한다는 것은 그를 미래의 공동 기획에서 협력할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협력을 불가능하게 수도 있을 적대감이나 모욕감을 밀쳐둔다는 것이다. 화해는 특히 처벌과 복수의 욕구를 포기하는 일이다. 

 

22. 혹시라도 순간적이고 격렬한 감정인 분노가 증오라는 장기간의 태도로 변화되면 그때부터는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특히 증오는 과거를 봉쇄하고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실상 증오는 독단으로 치닫기 쉬운데, 사실의 조각들을 수렴해 실제로 일어난 일과 이유를 종합하기보다는 가지 고정된 의견만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증오에 빠지면, 증오하는 대상이 누군지를 확실히 안다고 믿는다. 그리고 증오가 생겨난 책임도 대상에게 전가된다. 책임 전가는 증오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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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화해하지 못한 과거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가지 이유는 견딜 없을 만큼 과도한 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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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거의 진실에서 찾고 있는 가지는 자체로 화해의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 떄로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그런 일을 있었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23. 잔혹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우리는 충격을 이겨내고 삶을 지속해가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끔찍한 행위에 연루되지 않게끔 확실히 대비해야 한다. 책의 주제 하나는 민주주의와 종교 같은 대체로 온건한 제도가 악을 용이하게 있는 가능성이었다. 자기 가치관이 확고하고 현재 속해 있는 사회의 토대가 건전하다고 해서 자신이 거대한 악에 가담할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자만해서는 된다. 20세기 초반의 독일인들 역시 자신들이 지구에서 가장 문명화되고 품위 있는 국민이라 자부할 만한 많은 근거를 갖고 있었다. 끔찍한 일로 이어질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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