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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노트

복수의 심리학 (스티브 파인먼)

by Say_Young 2023. 1. 15.

1. 복수는 개인의 안녕, 영토, 긍지, 명예, 자존감, 신분, 역할을 위협하는 것들을 억제한다. 앙갚음은 부당 행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수는 이지러진 평형과 서열을 재설정한다. 복수는 개인간 암투, 집단의 내분, 노사 분쟁, 내전과 국제전에 존재하는 암묵적 관습법이다. 자아와 공동체의 궁극적 자기 진술이다. 타인의 침범을 막는 방어 수단이자 경고 조치다. 날것 그대로의 정의다.

 

2. 사실 인간관계는 도덕적 비난이나 법의 견책을 받지 않을 정도의 소소한 대거리를 전략적으로 수반한다. 복수가 잃은 자체(재산, 가족, 친구 ) 되돌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복수를 통해 부수적 상실(자부심, 명예 ) 회복할 있다. 이런 경우는 복수를 노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이렇게 말했다. "만약 원수가 명예를 훼손했다면, 복수로 그것을 복구할 있다. ... 또한 복수는 내가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거기서 비로소 합의와 조정이 의미를 가진다." 

 

3. 함무라비 법전은 무엇보다 특정 범죄에 대해 동해보복법, 일명 '눈에는 , 이에는 '법으로 유명하다. 법은 복수를 국가의 전유물로 책정한다. 다시 말해 정의 구현은 국가의 특권이지 개인의 재량에 있지 않았다. 이를 돌에 새겨 만천하에 분명히 드러낸 것은 강력한 권위의 상징이다. 

 

4. 18세기 이후 형사 사법 정의 개혁가들의 노력에 따라 사법 정의의 균형이 응보주의적 처벌에서 교화와 갱생의 회복적 사법 정의로 옮겨갔다. 현재는 사형이 효과적인 안전 강구책도, 범죄 억제책도 되지 못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동해보복법은 아직도 세계 여기저기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5. 19세기 후반이 되자 기사도적 명예는 완전히 유행이 지났다. 심각한 개인적 반목은 이제 결투장이 아니라 법정으로 무대를 옮겼고, 양방은 피를 흘리기보다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명예 폭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선수들을 만나 형태를 달리했을 뿐이다. 새로운 선서는 바로 스트리트 갱의 모습을 도시의 신종 부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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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사회학자 프레더릭 스래셔는 시가고 갱의 역사를 논하면서 갱단을 "증오와 복수욕이 반복적인 모욕과 습격으로 끝없이 진작되고, 일방의 살인 행각이 상대의 살인 행각을 부르는" 소사회로 정의했다. 

 

6. 공허한 정치적 수사를 벗겨내면, 전쟁은 본질적으로 인간성을 파괴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숭고함도 없다. 복수욕만이 마구잡이로 흐른다. 

 

7. 대개의 직장내 복수는 보다 미묘하게, 심지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용인과 아량의 한계치는 항상 시험받는다. 거기에 위상, 자존감, 기세가 함께 시험대에 오른다. 

 

8. 근로자 사보타주는 노사 분규의 역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노동자가 여러 방법으로 작업 능률을 떨어뜨리는 것을 말하는데, 19세기 프랑스 공장 노동자들이 신던 나막신 '사보'에서 유래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신고 있던 사보를 벗어 기계 속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9. 아주 악의 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때로 직장 작은 복수들은 약간의 사기 진작, 피할 없는 울분과 불의에 대한 해독과 같은 상당한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많다. 직원들이 불만감이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면 동맹태업 같은 대규모 움직임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런 곳에는 협의와 협력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근무 환경과 작업의 성격 자체에 보다 근본적인 불합리와 결함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10. 살해당한 가족을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그것이 살인자를 편안히 살게 내버려둘 이유는 되지 않는다. 고통을 고통으로 되갚고 싶은 격렬한 욕망이 끓어오른다. 응징 욕구는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도덕과 이성이 만든 제약들을 우회하는 길을 끝없이 찾는다. 

복수는 해악으로 치부되지만 그렇다고 백해무익하다고도 없다. 앞서 살펴본 대로 복수는 사회적 부정을 노출시키고 바로잡는 순기능도 한다. 불평등한 억압 관계에서는 중요한 저항의 경로가 된다. 또한 특정 경쟁 상황에서는 보복이 오히려 칭찬받고 환호받기도 한다. 예컨대 비즈니스와 스포츠 세계에서는 패배자에게 반격을 권장하고, 예상을 뒤엎는 역전을 응원한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통제 불능의 복수다. , 도덕률, 종교 교리들이 그것을 막기 위해 탄생하고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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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용서를 강조하는 윤리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불필요한 죄책감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11. 인간은 반복수주의라는 허울을 덮어쓰고 있다. 국가들이 전쟁을 벌이지 못해, 전쟁이 일어날 곳에 무기를 팔지 못해 안달인 오늘날, 허울은 어느 때보다 너덜너덜해 보인다. 복수라는 램프의 요정이 일단 세상에 나오면 괴물을 다시 호리병 속에 넣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중세에 전쟁과 단죄의 이름으로 벌어졌던 살육과 복수를 두렵고 역겹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분쟁은 그보다 할까? 오히려 비참함의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다. 보복 공격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초토화한다. 인류 앞의 중대한 도전은 지금도 여전히 같다. 그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 다리를 놓고, 우리를 하나로 묶을 측은지심을 살릴 좋은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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