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1. 우리의 동물적 열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살고 싶다는 욕구이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빈곤에 대한 공포때문에 자기 입에 독약을 털어 넣고 자기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는 일이 날마다 벌어진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은 백 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본능적 위축, 종교적 거리낌, 가족 관계 등으로 막상 행동에 나서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 빈곤의 지옥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기보존과 자기만족의 충동에 고상한 감정이 결합되고, 또 공포뿐만 아니라 사랑도 작용하여 생의 갈등을 계속 해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아내, 자식들을 가난 또는 가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야비한 일, 부정직한 일, 탐욕스럽고 약탈적이고 불공정한 일을 한다.
이런 사회조건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여론이 생겨난다. 재물을 탈취하고 지키려는 투쟁의 추진력으로서, 인간 행위의 가장 강력한 원천 중의 하나-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로 강력한 원천-를 동원한다. 그 원천은 남의 승인을 받고자 하는 욕구인데, 동료들의 존경, 감탄, 공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보편적 감정이다. 때떄로 가장 괴이한 형태로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디에서나 감지된다. 그것은 아주 원시적인 야만인이나 가장 세련된 사회의 아주 교양 높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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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명심이 헛된 희망을 부추긴다. 인간을 애쓰고, 분투하고, 고생하고, 그리고 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것 때문에 얼굴이 창백한 학생이 한밤중에 램프의 심지를 다듬으며 면학에 열중한다. 이것 때문에 인간은 피라미드를 건설했고 에페수스 신전에다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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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욕망하는 것을 존경한다. 바다에서 풍랑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안전한 항구가 아주 아름답게 보인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 목마른 자에게는 물, 힘없는 자에게는 힘, 영혼에서 지적 동경을 느끼는 자에게는 지식 등도 역시 멋지게 보인다. 이렇게 하여 가난의 고통과 가난의 공포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부의 소유를 동경하게 만든다. 부자가 되는 것은 존경을 받고, 찬양의 대상이 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초창기 캘리포니아 해안을 오가는 비좁은 증기선에는 보통실과 특식 손님들 사이에서는 현격한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성의 이러한 원칙을 잘 보여준다. 특실이나 보통실이나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보통실에서는 효율적인 서비스를 보장하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식사 때마다 혼잡이 벌어졌다. 반면에 특실에서는 각 손님마다 지정석이 있었으므로 음식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공포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보통실 같은 혼란과 낭비가 벌어지지 않았다. 두 선실의 차이는 인간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련 규정의 실시 여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3. 이런 강요된 노동에서 해방된다면, 인간은 더 열심히 더 잘 일하게 된다. 그때에는 자신의 취향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까닭이다. 그때에 인간은 그 자신 혹은 남들을 위해 실제로 일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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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털어놓고 말해 보자면, 인류의 생활 조건을 개선시키는 일, 지식을 확대하고 인간의 힘을 증진시키는 일, 문학과 사상을 아주 풍성하고 고상하게 만드는 일 등은 생계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인의 채찍질이나 동물적 생필품을 얻기 위해 억지로 노동을 강요당한 노예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먹고, 마시고, 입고,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한 일이 아니며,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 수행된 일이다. 가난이 사라져버린 사회 구조에서, 이런 종류의 일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4. 진보의 동기는 인간 본성에 내재된 욕구다. 가령 동물적 본성의 욕구, 지적 본성의 욕구, 동정심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욕구, 살아 있고, 알고 싶고, 행동하려는 욕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지 않으며, 그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다.
5. 그러므로 정신력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인간은 진보에 쏟는 정신력-지식의 확대, 방법의 개선, 사회적 조건의 향상에 기여하는 정신력-에 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정신력의 양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신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듯이 정신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진보에 기여할 수 있는 정신력은 진보와 무관한 목적에 투입된 정신력을 뺀 나머지 부분만 투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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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남들과 떨어져 혼자 있는 상태라면 그는 목숨을 부지하는 데 온 힘을 투입해야 한다.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모임을 유지할 때에만 그의 정신력은 더 높은 목적에 투입될 수 있다. 그런 모임 덕분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적극적 협력을 통하여 노동의 분업과 경제적 절약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모임(association)은 발전의 첫 번째 필수 요건이다. 사람들이 평화로운 모임을 유지할 때 개선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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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평등한 모임은 사회 발전의 법칙이 된다. 모임은 정신력을 해방시켜 사회의 개선에 투입되게 한다. 평등, 정의, 자유 - 이런 것들은 도덕 법칙의 명령이므로 결국 같은 것이다 - 는 정신력이 쓸데없는 갈등에 휘말려 소모되는 것을 막아준다.
여기에 진보의 법칙이 있다. 그것은 모든 다양성, 모든 진보, 모든 정체, 모든 퇴보를 설명해줄 것이다. 인간은 함께 가깝게 어울릴수록 진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서로 협동함으로써 사회 개선에 바쳐지는 정신력을 향상시킨다. 그러나 갈등이 유발되거나 모임이 모임이 불평등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발전의 경향은 감소되고 견제되어 마침내 퇴보하게 된다.
6. 이런 자연 조건의 다양성은 사회 발전의 다양성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인간 내부에 하나의 장애물을 형성시켰는데 그것은 개선을 억제하는 적극적인 반발력으로 작용했다. 가족과 부족이 서로 분리되어, 그들 사이에 사회적 유대감이 작용하지 않으면서 언어, 관습, 전통, 종교 등의 차이가 발생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 규모가 크든 작든 각 사회가 짜내는 사회적 그물망의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차이들과 함께, 편견이 생기고, 적대감이 솟아오르고,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쉽게 갈등을 유발하고, 공격성은 또다른 공격성을 낳고, 악행은 복수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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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서로 독립된 인간들 사이에 이스마엘의 적대적 감정과 카인의 못된 심보가 생겨났다. 그 결과 인간 사회의 상호 관계에서 전쟁이 만연하고, 인간의 정신력은 공격과 방어, 상호 살육과 부의 파괴, 전쟁 준비 등에 소모되었다.
7.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사람들의 모임이 구성된 곳이면 어디에서나 문명이 생겨났고, 그 모임이 사라진 곳에서는 문명도 따라서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8. 사회가 성장하면서 예전의 사회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인간의 기질은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집단의 힘을 사회 내의 소수의 손에 집중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의 발전이 더 큰 불평등을 낳으므로 이런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가 더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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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의 전문화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해볼 수 있다. 사회가 크게 성장했을 때에는 모든 생산자를 전투 목적으로 일터에 불러내는 것보다는 정규 군대를 조직하여 전투 기능을 전문화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전문화는 필연적으로 군대 계급 혹은 그 조직의 우두머리들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내부 치안유지, 사법 행정, 공공시설의 건설과 유지 등도 같은 방식으로 특별한 계급의 손에 권력이 옮겨가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계급은 일단 권력을 확보하고 나면 그들의 기능을 확대하고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려 한다.
9. 그러나 가장 큰 불평등의 원인은 토지의 소유가 가져다주는 독점적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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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은 한동안은 어느 정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치스러운 세공품의 발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의 노동을 덜어주고 생산력을 높여주는 말명은 아닐 것이다. 사원들의 비밀스러운 공간과 어의의 의무실에서는 지식이 여전히 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지식은 비밀 사항으로 감추어질 것이고, 설사 외부로 나와 사람들의 생각을 드높이고 공동생활을 개선하려드는 즉시, 위험스러운 혁신으로 낙인 찍혀 축출될 것이다. 그것은 사회 개선에 바쳐지는 정신력을 감소시킬 것이고, 그에 따라 불평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개선에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이다.
일반 대중은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에 내몰려서 주변 환경에 무지하게 되고, 그리하여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경향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사례를 들 필요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기존의 사회 제도 덕분에 특별한 이득을 누리고 있는 계급들의 보수주의도 그에 못지않게 강력하다. 설사 개량을 지향하는 것이라도 혁신에 저항하는 경향은 종교, 법률, 의학, 과학, 직인 길드 등 여러 분야의 특별한 조직들에서 널리 발견된다. 특히 그 조직의 구성이 긴밀할수록 저항의 강도가 높다. 구성원 간의 긴밀도가 높은 결사는 언제나 혁신과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변화가 그들을 보호해주는 장벽을 파괴하고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본능적 공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지식과 기술을 철저하게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사회 조직의 경직이 발전의 뒤를 잇게 된다. 불평등의 심화는 반드시 사회 발전을 정지시킨다. 그리고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거나 쓸데없는 반작용을 일으킨다면, 현상유지에 필요한 정신력마저 고갈시켜 문명의 퇴보가 시작된다.
10. 이렇게 사회가 여러 계급(신분)으로 분화하면서 인간의 모임이 자유롭게 풀어놓은 정신력은 낭비되기에 이르렀고, 계속적인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점진적으로 세워졌다.
11. 사회제도의 정비가 정의를 추진하고, 인간들 사이의 평등성을 인정하고, 구성원 각자에게 다른 사람들의 동등한 자유를 부여한다면, 문명은 저절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이런 일을 게을리하거나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하던 문명이 정지하고 마침내 퇴보했다. 정치경제학과 사회과학은 1,800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이 가난한 어부들과 농민들에게 가르친 단순명료한 교훈 이외의 것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
12. 모든 문명국가에서 가난, 범죄, 정신이상, 자살 등이 증가하고 있다. 문명국가에서 과로, 영양부족, 지저분한 주거 환경, 해롭고 단조로운 직업, 어린이 노동, 빈곤이 여자들에게 부과하는 힘든 일과 범죄 등에서 발생하는 질병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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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증가에 비례하여 우리는 더 많은 감옥, 더 많은 구빈원, 더 많은 정신병원을 지어야 한다. 사회가 죽는 것은, 위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시작하여 위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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