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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노트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이영훈)

by Say_Young 2021. 7. 15.

(발췌)

의외로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경찰관이 말했다.

그 혜영이란 애가?

네, 제일 만만하거든요.

만만해요? 소녀시대인데?

경찰관이 걸음을 멈췄다. 경찰관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요?

내가요?

아까 아저씨 애인도 평범하고 만만하다면서요?

아니, 그녀는 그렇다 쳐도, 혜영인가 하는 애는 아무리 평범해도 소녀시대인데.

애초에, 소녀시대 좋아하는 게 그런 거잖아요.

네?

만만하니까 좋아하는 거잖아요. 주변에 만만하지 않은 사람들 뿐이니까. 아저씨가 그 애인한테 청혼하려는 것도 그런 거잖아요. 나이든 사람들이 소녀시대 좋아하는 것도 그런 거고. 어린데, 착하게 굴고, 예쁘고, 다들 좋아하고.

빛을 등지고 경찰관이 서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져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저 어린 청년으로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뱃속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를 꺾었다. 어둠 속에서 경찰관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저씨 양복, 멋지네요. 눈이 부셔요

경찰관이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원래는 말이죠,

경찰관이 말했다.

원래는 여기 아무 데서나 똥 싸도 되잖아요.

경찰관이 휘휘 손을 저었다.

그렇잖아요? 여기 어디서 대충 똥 싸도 되고, 굳이 만만한 사람에게 청혼하지 않아도 되고. 원래는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래서 소녀시대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모두가 아무것도 만만하지 않으니까. 이것저것 못 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 그렇지만, 좋아하는 건 꽁짜니까, 그래서 그렇게 소녀시대가 좋은 거 아니에요?

공짜, 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경찰관이 말했다.

공짜니까, 기왕이면 열심히  하는 게 좋겠죠.

 

(감상)

- 화자는 소녀시대중에 가장 평범한 혜영이란 멤버를 사람들이 은근이 좋아하는 이유가 '만만해서'라는 경찰관의 말에 의문을 표한다.

아무리 그래도 인기 걸그룹 멤버인데 만만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 경찰관은 화자에게, 당신이 지금 만나는 '만만한' 그녀에게 청혼하려는 것도, 사람들이 '만만한' 혜영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인데 왜 이해를 못하느냐고 묻는다. 

- '공짜'니까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이렇게 이해된다. 모든 것이 만만하지 않고 못 하는 것들이 많은 삶 속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 자체를 회피하게 된 것은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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