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개요]
1. 빈곤국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위로 옮겨가는 나라들은 무엇보다 다음 세 가지 항목, 즉 자동차, 단백질(육류와 곡물), 보건의료 복지를 추구한다. 이것은 외국인들에게는 관련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 원나라 왕조풍의 화병이 계속 구워지던 1500년경에 이미 중국은 산업혁명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영국을 무찌를 수 있는 모든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보수적인 관료들은 무역과 돈의 흐름을 금지했다. 현대 중국의 공산당 관료들은 “정신 상태가 지리적 위치를 이긴다”라는 생각을 거부했기 때문에 구소련이 70년 동안 그늘 속에서 살아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서는 구차한 변명만을 늘어놓았다. 로널드 레이건이 말했듯이, 공산주의식 농업에는 네 가지 잘못된 것이 있다.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태도, 즉 정신 상태이지 지리적 위치가 아니다. 한 나라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찾아 길을 묻는 지혜일 수 있다.
경제사상의 역사는 종종 배고픈 사람들, 누추한 사람들, 그리고 재빠른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책에서도 여러분은 이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3.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런 비난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경제라는 기상에 나쁜 뉴스를 만드는 장본인들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알리는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간단하다. 그들은 항상 인류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 살지 않는다. 세계는 젖과 꿀이 넘쳐 나는 곳이 아니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주택과 더 넓은 주차장, 더 많은 노동 시간과 더 많은 여가 시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나쁘고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한번에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4. 이런 중상주의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비판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에서 근대 경제사상사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다. 그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중상주의자들의 이론을 비판했다. 첫째, 중상주의자들은 화폐와 귀금속에 기초해 부를 측정했다. 반면 스미스는 실제 부는 국민들의 생계 수준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금 자루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그것이 언제나 쌀가마니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둘째, 스미스는 부는 한 나라의 소비자 관점에서 측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통치자나 그에게 아첨하는 상인들에게 돈을 쥐어주는 얄팍한 술책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스미스는 개별적인 동기 부여, 발명, 혁신이 경제 번영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수 특권층에게 독점권이나 보호 정책 같은 혜택을 부여하고자 했던 중상주의자들의 정책은 부를 늘리기는 했지만, 정치체제는 마비시켰다.
[아담 스미스]
1. 그런데 200년도 훨씬 전에 출간된 <국부론>은 어떤 책일까? 괜찮은 책일까? <국부론>은 괜찮은 책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책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단숨에 때려눕히는 오만 가득한 신들처럼, 스미스는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보면서 무려 900페이지에 걸쳐 세상사에 대한, 특히 경제에 대한 사실, 분석, 예언, 우화 등 자신의 위력을 뿜어냈다. 무엇보다 스미스는 가장 명료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2. 애덤 스미스가 발견한 인간의 자연적 충동 또는 성향은 인간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 다시 말해, 비록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를 줄곧 따라다니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어떤 변화나 발전을 바라지 않을 만큼,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 한 순간이라도 완전하고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번째, 스미스가 발견한 인간의 자연적 충동 또는 성향은 “인간의 본성이 갖는 분명한 성향은 …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교환하고, 교역하고, 거래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성향이다."
3. 스미는는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분 전환 차원에서라도 좀처럼 모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일단 모였다 하면 소비자인 국민들을 대상으로 모종의 음모를 꾸미거나 가격 담함을 논의하기 일쑤다”라고 썼다.
4.정부의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논자들은 스웨덴과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미국보다 규제가 심하지만, 가계 수입은 미국과 거의 비슷하고 삶에 대한 만족도 역시 비슷하다고 자주 지적한다. 따라서 그들은 정부의 규제 조치가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혹시, 그들이 나에게 이런 주장에 대한 답이나 반박을 듣고 싶어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국과 같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완화된 경제가 그렇지 않은 경제보더 더 시장 혁신적이다.”
[맬서스]
1. 맬서스가 지저스 칼리지로 돌아왔을 무렵, 대륙에서는 혁명의 파도가 거세게 일고 있었다. 1793년, 프랑스에서는 혁명가들이 루이16세를 베르사유 궁전에서 끌어내 교수형에 처하고 공화정을 선포했으며, 그리고 이어 영국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가들과 설교자들은 폭풍 뒤에 고요가 찾아오듯이 머지않아 에덴 이후 가장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하고 다녔다. 일찍이 루소는 인간은 행복하고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에 의해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썼다. 이에 볼테르는 루소의 초자연주의가 그의 작품을 읽는 이로 하여금 네 발로 기어다니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그러나 맬서스는 이런 유토피아적 환상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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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의 아버지 다니엘 맬서스는 고드윈-페일리-콩도르세(특히 그의 유작)-루소의 유토피아적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와 달랐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숲을 걸을며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과 논리에 근거해 서로를 설득하려 들었다. 마침내 감상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공상가 아버지에게 화가 치민 맬서스는 그 길로 후대에게 <인구론>으로 알려진 <인구의 원리가 미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론 - 고드윈, 콩도르세, 그리고 그 외 작가들에 대한 고찰을 포함해>라는 제목의 책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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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팽창하지만, 식량 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2. 이상의 내용으로 맬서스를 하층 계급을 멸시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으로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예방적인 억제가 실패해 적극적인 억제, 즉 전쟁이 일어나고 기근이 난무하며, 역병이 창궐할 경우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입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그들에 대한 온정어린 시선으로 가득하다. 후일 케인스가 주장한 것처럼, 맬서스가 인구 성장에 대하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사실 그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인류애 때문이다.
3. 예상치 못하게 온 나라에 그가 울린 경종이 알려지자 맬서스는 그가 사용한 치밀하지 못한 과학적 방법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인구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 자료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미국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료는 정확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한데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은 한때 영국의 식민지에 불과했다. 게다가 맬서스는 <인구론> 전반에서 감도는 숙명적 비관주의도 불만스러웠다. 그렇다면 대안은 좀 더 엄격한 과학적 방법과 신빙성 있는 자료를 통해 보완된 <인구론>의 개정판을 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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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어조나 분위기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초판이 철저하게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다면, 개정판에서는 다소 분위기가 완화됐다. 무엇보다 맬서스는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있고, ‘도덕적 자제력’을 통해 출산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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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맬서스는 도덕적 자제력을 팽개치고, 서른여덟에 해리엇 애커셜일하는 처자와 결혼했다.
4. 인구 증가와 관련한 최근의 관련 문헌을 검토하기 전에 맬서스의 예측을 대충이나마 평가하고 넘어가자.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산술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던 식량 생산 및 공급은 예상과 달리 바닥을 기지도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맬서스가 제시했던 이유 때문은 아니다. 반대로, 맬서스가 관심을 두었던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사람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더 오래 살았으며 맬서스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자제력’을 보였다.
맬서스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몇 가지 흐름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 분명한 통계적 실수를 범했다. 사소한 실수이기는 하지만, 맬서스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제공한 인구통계조사 자료에서 미국의 인구 증가율이 해외에서 유입되는 이민자 수와 본토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수를 구분한 것인지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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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보다 더 결정적인 실수는 맬서스가 의학의 발전, 농업 혁명, 그리고 산업혁명의 시작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런 실수는 그를 족집게 예언가에서 거짓말쟁이 점쟁이로 추락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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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가 예측한 것과 달리 식량 생산은 산술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식량 생산이 인구 성장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오히려 인구 성장을 부추겼다.
5. 이런 그를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맬서스에게는 연구에 필요한 충분하고 정확한 자료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논박했던 유토피아적 주장들은 너무 이상적이고 허황됐던 반면, 그의 분석은 상대적으로 치밀하고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1820년에 출간한 <정치경제원리>에서 언급한 잣대를 그에게 그대로 적용할 경우,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정치경제학자들과 저술가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 그리고 의견 불일치의 주된 원인은 조급한 단순화와 일반화에 있다(…) [그리고] 포괄적인 경험에 근거해 자신들의 이론이 갖는 정확성이나 유용성을 검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농업 혁명을 간과하고, 너무 조급하게 인구가 성장하는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자신이 당대의 학자들과 저술가들에 대해 지적한 똑같은 오류를 범했다.
맬서스의 오류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절대, 두 번 다시, 정확하지도 않고 신뢰도 가지 않는 과거의 자료를 토대로 논거를 삼지 말라는 것이다.
6. 1970년대, 환경오염, 인구 증가, 그리고 유가 상승에 자극을 받은 일군의 학자들이 세계의 미래를 예견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지구를 뒤덮었다. 현재 추세를 감안할 때, 자원은 바닥날 것이고, 그에 따라 산업 생산성은 떨어질 것이며, 그리고 인구는 식량 생산량보다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우울한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댄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유럽의 권위 있는 학자들로 이루어진 로마클럽이라고 하는 단체였다. 이 단체는 출간 직후 바로 베스트셀러 항목에 오른,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그리고 있는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로마클럽은 앞선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현재의 세계사적 추이를 분석하고 나서, 만일 맬서스가 제안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100년 이내에 세계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단체가 제시한 예방적인 조치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을 중단하고, 인구 팽창을 멈춰야 하며, 그리고 자원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한 아이러니한 것은 맬서스도 그랬듯이 이들도 자신들이 내놓은 예측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로마클럽은 그것을 다시 평가해 얼마 후 좀 더 희망 섞인 결과 보고서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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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이상의 보고서들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런 비관적인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고, 그에 따라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예측하는 모델을 내놓은 사람들은 200년 전에 맬서스가 사용한 비관적이고 정적인 가정들을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모델을 ‘PIPO’라고 부르며 비꼬기도 했다. PIPO란 “pessimism in, pessimism out”의약어로 투입-산출 모델에 따라 “비관주의를 투입하며, 비관주의가 산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본 전제가 비관적이기 때문에, 그 결과 또한 당연히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델의 핵심 가정 중에 경제학의 주요 원리를 위반한 것이 있다. 즉, 경제 행위자들에게 경제활동의 주요 준거가 되는 가격 신호(또는 시장 신호)를 무시했다. 앞서 논의한 애덤 스미스와 하이에크의 주석의 예를 떠올려보자. 만일 주석의 수요가 증가했다면, 그것의 가격은 오를 것이고, 사람들은 주석을 덜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석을 대체할 자원을 찾거나 추가로 주석을 공급받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장 신호를 무시한 로마클럽의 초기 보고서에서는, 만일 주석의 수요가 증가하면, 그것은 완전히 바닥나거나 고갈될 뿐 다른 일, 즉 그것을 대체할 다른 자원을 찾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물론 공급이 한정되어 있거나 대체가 불가능한 자원도 있다. 그런 자원은 가격이 아무리 상승해도 수요는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자원은분명히 예외적인 것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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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모델은 기술 개발이 자원의 수요를 앞지를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데이비드 리카도]
1. 한번은 좀 무례한 자연과학자가 한 유명한 경제학자에게 중요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경제 규칙이 하나 있으면 말해보라고 요청했다. 그 경제학자는 두서없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 가운데 그의 비교우위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무분별한 수입 쿼터, 관세 정책, 그리고 무역 전쟁 등이 세계 경제사를 망쳐놓는다.
2. 비교우위론을 살펴보기 전에 리카도가 왜 그것을 애써 정치가들에게 설명하려고 했는지 살펴보고 넘어가자. 앞서 애덤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기업가들은 지역 상공회의소 석상에서는 자유 경쟁 원칙을 즐겨 외치지만, 막상 의회에 출석하면 정치가들의 귀에 대고 각종 특혜를 요청하기 일쑤다. 리카도가 살았던 시대에 누구보다도 돈을 뿌리면서 의원들에게 특권과 특혜를 요청했던 계급은 지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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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주아지는 임금을 지급하고 노동자를 고용하기 때문에 그것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곡물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곡물 가격 상승은 임금 인상 압박 요인이 되기 때문에 곡물 가격 하락은 그들에게 희소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폴레옹 전쟁 이후 곡물 수입 재개를 두고 두 계급은 세력 싸움을 벌였고, 최종적으로는 지주 계급의 승리로 돌아갔다. 의회는 1815년에 일정 가격 이하로 곡물을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농민들(지주들)에게 곡물 독점권을 주는 것이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옥수수로 번역되는 ‘corn’이 영국에서는 귀리, 호밀, 참밀, 그리고 보리를 통칭하는 곡물을 뜻하기 때문에 이 법안은 “곡물법 Corn Laws”이라 불렸다.
3. 리카도는 사람이든 국가든 가장 적은 것을 포기하도록 하는 분야를 전문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각자의 ‘비교우위’다. 그리고 서로 포기해야 하는 것, 즉 산초에게는 물고기. 돈키호테에게는 움막이 각자의 ‘기회비용’이다. 그러므로 전문화는 기회비용이 더 낮은 쪽에 의해 결정된다.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자유무역은 교역 상대국이 경제적으로 앞서 있든 그렇지 않든 두 나라 모두에 이롭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나라 국민들이 더 많은 제품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국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다음과 같은 간결한 문장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설파했다. “저는 관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만, 제가 미국에서 외투를 한 벌 사면 저는 외투를 갖게 되고, 미국은 제가 지불한 돈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만일 제가 외투를 영국에서 사면, 저는 외투를 갖게 되지만, 돈은 영국이 갖게 되겠지요.”
이런 그의 주장은 옳다.하지만 관세에 대해서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링컨은 한 나라가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부유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중상주의자들처럼, 역대 대통령들의 얼글이 그려진 달러 뭉치를 많이 보유하면 보유할수록 부유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링컨이 영국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외투를 산다고 하자. 그는 미처 환전을 하지 못해 파운드 대신 달러를 지불한다. 그렇게 하면 런던에 사는 누군가가 링컨이 바꾼 달러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달러를 어디에 쓸까? 아마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도배하는 데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이 돈으로 (1)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거나 (2) 다시 파운드로 환전할 것이다. 만일 이 사람이 미국산 제품을 구입한다면, 링컨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국산 외투를 산 것을 기뻐할 것이다. 한편, 이 런던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산 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에 행복해할 것이다. 다른 한편, 런던 사람이 달러를 파운드로 교환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달러로 미국산 제품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링컨은 행복해할 것이다.
영국산 제품을 가득 실은 현존하는 초호화 여객선 퀸 메리 2세호와 미국 달러를 가득 실은 작은 보트 100만개와 맞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재무성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5달러짜리 지폐를 수십적 장 가까이 찍어내야 할 것이다. 링컨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인들은 아름다운 스웨터, 찻주전자, 그리고 트위드 정장을 갖게 될 것이고, 반면 영국인들은 달러 뭉치를 갖게 될 것이다! 비록 링컨이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거래를 할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링컨을 너무 놀려먹은 것 같은데,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끝내겠다. 링컨은 영국인들이 미국의 달러를 받는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미국의 달러를 받는 이유는 그것으로 미국산 상품과 금융 자산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세상을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만, 돈은 분명히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5. 리카도의 분석이 우리 시대에 가장 크게 시사하는 것은 부유한 국가들이 채택하는 보호무역주의가 저개발 국가들에게는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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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자들의 주장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사소한 실례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자문해보자.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사람과 거래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손해를 입을까? 미국의 석유 재벌 진 폴 게티 같이 돈 많은 사람이 자신이 손수 신발을 만들어 신는 것이 나을까, 시장에서 사서 신는 것이 나을까?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사람과 거래를 해서 손해를 입지 않고, 게티같이 부자인 사람이 시장에 가서 신발을 사 신는 것이 낫다고 한다면, 이렇게 반문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이 말레이시아에서 신발을 구매한다고 해서 반드시 손해를 입을까? 모든 국민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가 더 부유한 나라일까?
6. 그렇다면 영국이 고립된 섬나라를 택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시 리카도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러나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리카도가 이런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발샐할 일들을 한번 순차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자. 맬서스의 인구론을 토대로 리카도는 이렇게 전망한다. (1) 인구 증가로 인해 곡물 수요가 증가하고, (2) 이로 인해 농민들은 비옥도가 떨어지는 농지를 개간하게 되고, (3) 그 결과 농사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이 더 들어가며, (4) 곡물 가격 또한 상승한다. (5) 곡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도 상승하고, (6)이로 인해 사업가들의 이윤은 줄어들며, (7) 반대로 가장 비옥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의 이윤은 증가하게 된다.
7. 지주 계급에 대한 리카도의 비판과 지대에 대한 설명은 미국 태생의 경제학자이자 사회개혁론자인 헨리 조지가 1879년에 쓴 <진보와 빈곤>을 통해 격정적인 어조로 미국에 소개됐다. 더구나 예언자적 소질을 가지고 있는 언론인이기도 했던 헨리 조지는 많은 제자들을 이끌고 토지에 대한 “단일세 운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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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이 단일세 운동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경젤학자들은 리카도가 논의했던 ‘경제 지대’와 소작인들이 지주에게 지불하는 ‘단순 지대’를 구분했다. 리카도에 따르면, 경제 지대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토지 또는 노동 또는 자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초과해서 지불하는 비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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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연 설명을 하면, 현재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용 중인 토지, 노동, 또는 재화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는 경제 지대가 아니라 이전 비용이다. 역으로 이런 유지 비용을 초과하는 비용은 경제 지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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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는 경제 지대에 과세를 하자고 주장했는데, 과연 얼마만큼이 이전 지대이고, 얼마만큼이 경제 지대인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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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대에 세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라면, 토지, 노동, 자본에 경제 지대를 부과하는 것도 주관적인 근거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주관적 근거란 공정성이다.
[존 스튜어트 밀]
1. 밀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구제를 받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노동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 기금이 그들의 노동 의욕을 저하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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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밀의 대안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밀은 가난한 사람들을 신체 건강한 자와 장애인, 노약자, 아동으로 크게 구분했다. 그리고 신체 건간한 자들에 대해서는 구제 기금을 받는 대가로 노동(일종의 공공근로)을 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밀의 이런 제안에 귀를 기울인 나라는 없었다. 그러다가 1988년에 미국 연방 정부와 여러 주 정부에서 사회복지 제도의 일환으로 정부의 생활보조금 대상자에게 공공근로에 참여하거나 직업 교육을 받도록 하는 '근로복지' 프로그램을 채택했다.
2. 밀은, 경쟁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이 보여준 중앙집권적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결코 잊지 않았다. "나는 사회주의 교리 가운데 경쟁 폐지라고 하는, 가장 두드러지고 강렬한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 사회주의자들은 경쟁이 없는 곳에 독점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3. 밀은 1873년에 세상을 떠났다. 비롤 그는 정쟁에 나가 싸운 적도 없고,언성을 높여 화를 낸 적도 없으며, 누구한테 도전장을 내민 적도 없었지만, 그의 삶은 오로지 투쟁 그 자체였다. 그는 위선자들, 엘리트주의자들, 합리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다.
[카를 마르크스]
1. 마르크스는 역사에서 물질의 힘에 주목했다. 포이어 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에 따르면, 신은 단지 인간의 욕망, 필요, 그리고 속성의 투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실존적 존재인 인간이 신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뒤에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2. 헤겔의 머리가 구름 너머 저편에 있었다면, 마르크스는 코를 땅에 박고 문지르고 싶어했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 윤리, 또는 민족주의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창밖을 내다봐라. 인간이 한갓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발버둥치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 인간 없는 역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빵 없이 인간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최초의 역사적 행위는 이런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생산하는 것이다."
3. 그런대 왜 생산 수단의 소유자는 우리가 피땀 흘려 생산한 이윤을 수취할 권리를 가질까? 이에 대해 우리는 그가 재산, 즉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윤리적, 법적 체계를 수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크스의 의문은 바로 이것에서 시작한다.
4. 노동은 왜 착취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가의 이윤 획득 수단으로 '노동가치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가에게서 가치는 '티끌만큼도' 나오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바느질을 하는 영희나 대장간에서 일하는 철수만 가치를 생산한다고 보았다.
그러면 마르크스가 자신의 '노동가치설'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상상력과 기업가 정신을 간과했다. 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유형재의 투입만으로는 부족하다. VCR을 개발하는 데 새로운 유형의 재료나 더 철저한 노동 착취 방식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당시 비디오 산업은 다음 두 가지를 필요로 했다. 즉, 발명과 투자에 대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이 그것이다. 구소련 시절에 러시아인들이 미국산 데님 청바지를 그렇게 갈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구소련이 질 좋은 옷을 생산할 수 있는 면화나 노동자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상상력, 혁신, 규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비유형적인 요소가 성공적인 기업과 나라들을 그렇지 않은 기업들과 나라들과 구분하는 기준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불행하게도 인적 자본, 지식, 숙련, 또는 이윤 증대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리 기술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자본을 멸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동가치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번뜩이는 창의력과 아이디어 또는 아래와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는 내적 통찰력을 어떻게 설명할까?
5.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구현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조차 사회주의 관리 방식에서 자본주의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자원 부족, 이기주의, 해악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이 이상은 아마 앞으로도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보다는 천사에게나 더 적합한 일종의 천국 또는 실낙원을 닮은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허황된 열망은 선량한 사람들을 매혹시켜 마르크스주의의 복음을 내건 사악한 독재 정권들이 등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때 스탈린의 손을 들어주었던 조지 버나드 쇼는 구소련의 압제를 목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흔들며 지지를 철회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마르크스가 상기시키는 것은 경제 변화는 상당한 고충을 수반한다는 것, 권력은 언제는 압제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피착취 계급이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마르크스주의의 충고는 오히려 공산주의 국가들에게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알프레드 마셜]
1. 먼저, 카우보이 밴자이의 충고를 들어보자. "네가 어디에 가든 넌 거기에 있는 거야." 당신은 지금 오스트리아 국경선 앞에 와 있다. 조금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는 잊어라. 이탈리아에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것은 상관없다! 한계주의는 과거는 과거일 뿐 뒤돌아보지 말라고 선언한다. 문제는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출발점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이다.
2. 두 번째, 헤니 영맨의 농담을 떠올려보자. 오스트리아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때 무엇을 비교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당신은 이탈리아에서 맛봤던 지난 즐거움은 제쳐 놓은 채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오스트리아에 가서 누릴 수 있는 이득이 그곳에 가서 체류하는 경비를 초과할까? 만일 오스트리아에서 하루 동안 체류하는 경비가 50달러이고, 75달러의 기뿜늘 누릴 수 있다면, 그때는 두말할 것 없이 가라! 이탈리아에서 누릴 수 있었던 이득이 경비를 10배 가까이 초과했다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인가? 당연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스트리아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득이 비용을 초과한다면, 비록 전보다 그 폭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가야 한다.
3. 세 번쨰, <스쿠프>에 등장하는 편집자를 떠올려보자. 어느 정도까지 당신은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얻는 이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한, 즉 한계이익이 한계비용과 같아질 때까지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
4. 이 책에서 특별히 마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 네 가지 이유와 관련이 있다.
첫째, 가장 명확하고 가장 포괄적으로 한계 분석을 경제학에 접목했다.
둘째, 오늘날 미시경제학을 지배하고 있는 한계 전통이라는 것을 수립했다.
셋째, 존 메이너드 케인스, 후생경제학자 아서 세실 피구, 여류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을 포함해 20세기 저명한 경제학자드들을 다수 가르쳤다.
5. 누구보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이 실망스러워했겠지만, 마셜은 자신을 성작지의 길로 이끌어줄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그에게 경제학을 공부하라고 촉구하는 가난한 자들의 외침을 들었다.
형이상학에서 시작해 나의 관심은 윤리학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현재 사회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현재 도덕 과학이라 불리는 분야의 관련 서적들 두루 섭렵한 한 친구는 내게 공공연히 이렇게 말했다. "아아! 네가 정치경제학을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 그래서 나는 밀의 <정치경제원리>를 사서 읽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물질적 안락의 불평등보다는 기회의 불평등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방학 때마다 시간을 내어 여러 도시의 빈민가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그 속을 거닐어 보고,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이렇게 경제학을 마치 자신의 소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인 마셜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이미 짤막하게 언급했듯이, 중세 시대에는 신학, 법학, 의학이 지상의 학문 세계를 지배했다. 신학은 영적 완성을, 법학은 정의를, 의학은 육체의 건강을 목표로 했다. 마셜은 여기에 네 번째 학문을 추가하고자 했는데, 인류의 물질적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학이 그것이었다. 비록 많은 경제학자들이 서로의 업적과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싸웠지만, 마셜은 업적이나 명예를 탐하기보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인간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전념했다.
6. 그는 앞서간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이상주의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에 빠져 현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 현실 분석에 있어서 다른 누구보다 엄격하고, 신중하고, 또 사려 깊었다.
문명의 각 단계마다 시인들은 인류가 물질에 현혹되어 타락하기 전에 존재했다고 하는 '황금시대'를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묘사하는 것을 즐겼다. 물론 그들이 묘사하는 한가롭고 풍요로운 '황금시대'는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고 고결한 상상력과 결의를 자극하지만, 역사적 진리를 담보하기는 어렵다. (...) 그러나 누구나 자신이 하는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때, 이것은 아직까지 인간 본성에 남아 있는 불완전함을 무시하는 어리석음보다 더 나쁜 행동이다.
다시 말해, 마셜은 과거에 있었을지 분명치 않은 '황금시대'를 논하기보다는 오히려 세계가 점진적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논하는 것을 선호했다.
7. 마셜은 우리에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의사 결정을 면밀히 조사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한계주의는 미시경제학의 발전을 위해 길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미시경제학은 경제 행위자들이 자신의 처지나 위치를 재고하고, 만일 이익이 비용을 초과하면 새로운 의사 결정 단계를 밟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익과 비용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즉, 우리는 이익과 비용이 불변적인 경우에만 현실에서 뉴턴적인 행태를 가정할 수 있다.
경제학의 주요 관심은, 비록 그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늘 변화하고 발전하려고 하는 인간 그 자체다. 단편적이고 정적인 가설들은 동적이고 생물학적인 개념들을 일시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기초만 놓고 따져 본다고 해도, 경제학의 핵심 관념은 생동하는 힘과 운동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8. 다행스럽게도 학계의 호된 질타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원리>는 오랫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의 주요 관념들이 그만큼 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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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학생등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금의 경제학 교과서들과 정반대로 <경제학 원리>는 직접적으로 경제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경제학자들은 순수 이론 뒤에 숨어서는 안 되며, 세상을 직시하고 그들이 개발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해 그것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셜이 그런 도구로 자신만의 목잡한 모델을 개발하기는 했지만, 그는 그것을 본문에서 자세하게 다루는 대신 각주나 부록으로 처리했다. 자신의 현학을 뽑내기보다는 독자들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했던 것이다. 그는 단순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영어를 사용했다. 마셜은 "길게 질질 끄는 그리고 난해한 추론"은 "실질적인 연구를 위한 기관"이라기보다는 과학적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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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은 경제학자들이 시도때도 없이 수학을 남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마셜에게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원한 우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수학자처럼 사고하면서도 절대 애매한 기호나 자신만 알 수 있는 비밀 공식에는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셜은 리카도와 밀의 이론을 미적분을 이용해 수학적으로 재해석했지만, 자신의 이론이나 주장은 어떤 경우에도 수학적 증명을 통해 입증하려 하지 않았다.
9. 또한 마셜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반박했다. 앞서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며 잠깐 언급했던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자. 우선 그는 인간은 물질을 창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인간은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을 재배열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만족을 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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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가 항상 자신이 판매하는 노동력에 대한 대가인 임금과 자본의 소모비용, 즉 기계의 감가상각과 원료 구입 비용을 초과하는 '잉여'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는 노동자 자신이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즉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착취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잉여의 전부가 노동의 산물이라고 가정한 것은 그들이 입증해야 할 가정을 오히려 논증의 근거로 삼는 모순을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입증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이 가설은 참이 아니다. 방적 공장에서 짜내는 실이, 기계류의 감가상각이 정해져 있다고 할 경우, 방적공의 노동을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방적공의 노동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고용자와 관리자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고용된 자본의 공동 산물이다. 그리고 자본 그 자체는 노동과 기다림의 산물이다. 따라서 실을 째나는 것은 많은 종류의 노동의 산물이자 기다림의 산물이다. 만일 그것이 노동과 기다림의 산물이 아니라 노동만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이자, 다시 말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은 정당화될 수 없는 냉혹한 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노동만이 잉여를 생산한다고 하는 전제 자체가 다른 가능성은 배제하기 때문이다.
10. 탄력성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가장 분명한 것은 대체재의 존재 여부다. (...)
두 번째, 대체재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요는 그만큼 더 탄력적일 수 있다.
(...)
경제학자들이 이론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를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교한 이론적 모델이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 탄력성 문제가 고려되면 전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 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가다듬으면서 마셜은 경제학자들에게 이론과 현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직접 보여주었다.
11. 비록 마셜이 빈민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했지만, 사회주의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었다. 오히려 그는 사회주의를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많은 철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셜은 공동 소유에 대해 두려움을 표시했다. 그는 "공동 소유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인류가 이기심을 버리고 공공선에 헌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인류의 활력을 빼앗고,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히 마셜은 자신의 점진적이고 진화론적인 벨트안샤웅, 즉 세계관에 기초해 "인내심 강한 경제학도라면 삶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을 갑작스럽고 폭력적으로 재조직화하려는 계획이 이로움보다는 오히려 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앨프리드 마셜에게 '조급한 것'은 '부정직한 것' 만큼이나 엄청 모욕적인 것이었다.
[베블런과 갤브레이스]
1. 소스타인 베블런의 제도주의 접근은 신고전파 경제학을 떠받치고 있던 두 기둥, (1) 어떤 한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자들은 그 상품을 더 많이 구매한다고 하는 마셜의 수요 법칙, (2) 노동자들은 그들이 임금을 받기 때문에 일하지 '일 그 자체를 위해서' 일하지는 않는다는 가설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뿐만 아니라 베블런은 수요와 공급이 점진적이고 순조롭게 균형점에 도달한다고 가정한 한계주의자들의 주장을 공격했다. 구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은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경제는 항상 변화한다고 항면한다. 균형이란 현실 세계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경제학자들의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이 보기에 균형이란 바람일 뿐이지 현실은 아니다.
2. 베블런에 따르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각각의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하면서 그에 따른 비용과 이익을 개별적으로 저울질한다고 가정했다. <유한계급론>에 앞서 쓴 한 논문에서 베블런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이런 가정을 감각적이고, 매우 고차원적인 은유를 통해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을 기본적으로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쾌락과 고통을 번개같이 계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이런 인간은 자신의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지만, 절대 접촉하는 일이 없는 무수한 자극들에 이끌려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는 둥근 구슬과도 같은 존재다." 베블런의 말도 듣고보니 일리가 있다.
이런 신고전파 경제학 모델이 갖고 있는 오류는 무엇인가? 개인은 하나의 독립적인 구슬이 아니다. 각각의 구슬은 어디로 굴러갈지 결정하기 전에 다른 구슬을 이미 바라보고 있다.
3.그러나 일부 상품, 즉 '베블런재'는 소비자의 수요가 상품의 효용뿐만 아니라 그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격, 즉 예상되는 현시적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
카를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베블런은 인간이 창조적 욕구, 다시 말해 인간이 솜씨나 기량을 뽐내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시적 여가와 현시적 소비가 사회에 파고들면서 이런 창조적 욕구가 사라지고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마르크스가 했던 계급투쟁 같은 분석은 하지 않았다. 베블런에게 있어 그의 적은 자본가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에게 노동자들이 영웅일리도 없다. 그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기용했다. 그에게 나쁜 사람은 경영자들이었다. 그리고 기업체를 소유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는 경영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앞세워 선악대결을 그린다. 현대 세계에서 창조, 향상, 생산의 욕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엔지니어들뿐이다. 반면 그들의 위에서 항상 지시하고, 감독하고, 군림하는 경영자들은 창조성을 억압한다. 경영자들은 현시적 소비에만 관심이 있다.
4. 갤브레이스는 자신이 마셜의 '한계효용과 수요 법칙' 을 멋지게 타파했다고 생각했다. 시장은 어떤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진정한 수요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정한 수요는 심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은 광고업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심어주는 욕구만 읽을 수 있을 뿐 그들의 주관적인 심리는 읽을 수 없다. 갤브레이스는 이것을 의존 효과라 불렀다.
물론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단언만 하고 끝내지는 않았다. 그는 이것에서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기업들은 욕구에 투자하고 그것을 주입한다. 그러나 욕구는 그렇게 절박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사적 소비를 제한하고 자원을 공공시설을 늘리고 개선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갤브레이스는 도로 하나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공원과 슬럼가들을 유유자적 활주하는 고가의 리무진들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미국의 공공 부문은 쇠락해 가고 있는 데 반해 역겨운 냄새를 물씬 풍기는 사적 부문은 나날이 번성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
갤브레이스는 만약 정부가 민주적 사회주의와 계획 경제의 원리들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 암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기술이 노동자들을 대체하면서 실업률은 높아지고, 오염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집집마다 "새롭고, 기능은 향상되었지만" 전혀 쓸모없는 가전제품들로 넘쳐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5. 하이에크는 <의존 효과의 불합리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모든 중요한 욕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한다는 갤브레이스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사실상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필요는 몇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갤브레이스는 먹을 것과 섹스만이 실생활에서 중요하고, 그 외 다른 것은 사소한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일까? 여하튼, 하이에크는 욕구를 이야기하면서 외부의 환경이 욕구에 미치는 영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 갤브레이스의 논의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만일 갤브레이스의 주장이 옳다면, 문화는 사소한 것이 된다.
(...)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것은 주로 우리 뇌의 관심과 애정을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외적 요소의 산물이다.
6. 신제도학파는 베블런과 갤브레이스 두 사람이 수행한 모든 연구 성과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들은 마셜류의 경제학이 제도와 대립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마셜류의 메스와 가위로 제도를 해부하려고 한다.
(...)
최근의 법률 관련 저널들과 법정 판례들은 한계이익과 한계비용에 대한 논의들로 가득하다.
(...)
아래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전통적인 법률 분석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한 네 가지 주요 분야, 즉 과실법, 재산법, 형법, 기업 재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7. 핸드 판사는 세 가지 요인, 사고의 발생 가능성(P), 사고로 인한 손해 또는 손실의 정도(L), 사고 예방을 위한 비용(C)을 구분했다. 이 구분에 근거해 그는 사고에 따른 손해 또는 손실 비용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초과하면 피고는 과실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과를 도출한다.
[케인즈]
1. 케인즈주의자란 어떤 사람을 의미할까? 다음 두 가지 기본 명제를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1) 민간 경제는 완전 고용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2) 정부 지출은 경제를 자극해 완전 고용과 불완전 고용의 틈을 메울 수 있다.
2. 케인스는 재무부에 사표를 낸 뒤 서울러 당시 기준으로 볼 때, 뿐만 아니라 불름즈버리 그룹 기준으로도 가장 신랄하고 논쟁적인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그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각국 지도자들의 무능함을 질타하면서 독일이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3. 한편, 재테크에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던 그는 전후 주식시장 호항을 틈타 상품 거래와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
4. 경제 사가들은 대공황의 '원인'을 놓고 오랜 기간 논쟁을 벌였지만, 해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대공황의 원인을 묻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어떻게 해서 악몽으로 치달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전에도 경기 활황과 침체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기에 좋지 않은 일련의 사간들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1920년대에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가던 투자 기회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닥을 드러냈고, 이에 발맞춰 소비자들은 소비 지출을 줄이고 대출금 상환을 시도했고, 각국 정부는 서로 앞 다투어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했으며, 그리고 FRB는 이렇게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오히려 긴축 재정 정책을 폈던 것이다.
5. 그는 1936년에 고전파 경제학의 관점에서 대공황을 바라보는 잘못된 영국 재무부의 시각을 비판하고 거시경제학 분석에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집필하면서 자신이 정치가들에게 했던 충고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한다.
6. 케인스가 보기에 경제학 이론 가운데 가장 바보 같은 것은 세이의 법칙이다. 앞서 보았듯이, 토머스 맬서스는 케인스보다 1세기 앞서 세이의 법칙을 비판했었다. 한참 앞서 다룬 것 같은데,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자. 세이의 법칙은 상품 생산은 노동자와 공급업자가 생산된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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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통파 바보 멍청이들이 세이의 법칙에서 간과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세이의 법칙에서 가정하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제의 주기적인 흐름에서 뭔가 중요한 누수가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가계저축을 간과했다. 그렇다면 왜 가계 저축이 중요한가? 세이의 법칙대로라면, 상품 생산은 생산자와 공급업자에게 소득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생산자와 공급업, 즉 소비자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소득을 그 상품을 구입하는 데 모두 지출한다.
그런데, 그들이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를 지출하지 않고 저축한다면? 생산된 상품은 전부 판매되지 않고 창고에 쌓여갈 것이다.
7.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전파 경제학에 대해 양면 공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첫째, 그는 저축과 투자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가계와 기업은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저축하고 투자한다. 가계는 습관적으로 또는 자동차 구입이나 노후 대비 같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저축할 것이다. 반면 기업은 정치 상황, 확신, 기술, 환율, 또는 어느 팀이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지에 따라 투자 계획을 바꿀 것이다.
이렇게 저축과 투자 목적이 다른 가계와 기업이 이자율 하나로 서로 조화를 이루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8. 고전파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경기 침체가 닥치면 실질 임금은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명목 임금 하락을 납득하지 못하리라고 케인스는 생각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기가 후퇴하면 기업은 투자를 줄인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저축은 결국 투자와 일치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될까? 그것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저축할 여력도 동시에 읽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금과 물가가 서로 조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경기 침체나 공황은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1930년대 초에 저축과 투자가 일치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즉, 저축도, 투자도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파 경제학의 화려한 쇼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9. 케인스는 자신의 분석을 통해 재화와 용역에 대한 가계와 기업의 수요가 충분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일 가계와 기업이 충분히 구매하지 않는다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할 것이고 생산을 줄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할 것도 없다. 가계와 기업의 수요를 늘리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황에 대한 케인스의 알약 처방이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처방을 간단한 모델로 만들어보자. 먼저 가계에 대해 논하고, 다음에 기업에 대해 논할 것이다. 가계와 기업 중 구매력이 큰 쪽은 가계다. 따라서 가계는 총수요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가계의 지출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가족 규모, 기호, 기대가 중요하지만, 케인스는 소득을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로 지목한다.
10. 사실, 케인스는 대공황 당시 미국의 승수가 약 2.5정도 될 것이라고 추산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들과 여러 잡지에 기고한 논문들을 통해 대규모 공공부문 지출 프로그램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1933년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쓴 서한에서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정부의 후원 아래 대규모 지출이 필요합니다. 어디에 지출할지 대상을 결정하는 일은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만, 단기간에 대규모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분야, 예를 들면 (...) 철도 같은 분야가 좋을 것입니다. 일단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11.케인스는 대부분의 투자가 '동물적 감각'으로 불리는 비이성적인 힘에 이끌려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12. 놀라운 것은, 케인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가 유순해지면서 성품 또한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이다. 케인스는 인류가 경제학적으로 진화하기 위해 이기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물질적 욕구를 충족함으로써 인류는 그들의 욕구를 친절이나 사랑과 같은 고차원적인 것으로 고양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후로도 줄곧 불행하게 살 수도 있다. 케인스는 창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고, 번쩍이는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 한들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다.오늘날, 퇴직자들은 지루한 일상을 불평하면서 뭔가 사소한 일이라도 하고 싶어한다. 세상 전체가 퇴직자들로 넘쳐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넘쳐나는 퇴직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음악인이자 방송인이었던 로런스 웰크를 얼마나 많이 필요로 할까? 세상은 평온하지만, 사람들 마음속에는 실존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할 것이다. 인간은 종종 목표 달성보다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아마 이것이 아마추어 예술 애호가였던 케인스, 즉 예술품 수집가, 투자자, 후원자, 큐레이터였던 케인스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경제학으로 인류를 천국의 문턱까지 인도했을 경우 더 이상 할일이 없어 실직자가 되는 것을 대비해 보험을 들어놓는 식으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장기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했다.
[밀턴 프리드만]
1. 통화주의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케인스의 모델을 비판했다.
첫째, 정부는 대개 훈련한 운전사가 되지 못한다.
둘째, 경제의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는 재정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통화주의라 불리는 경제학의 한 지적 조류는 경제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속 페달은 '화폐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고, 브레이크는 '화폐의 공급을 줄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통화주의자들은 누가 운전석에 앉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케인스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한다. 케인스주의자들에 따르면, 정부 지출과 조세 정책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의회가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통화주의자들은 금융 업계를 관장하는 FRB가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며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2. 화폐란 무엇인가? 조개껍질과 구슬 등을 비롯해 어떤 것이든 다 화폐가 될 수 있다. 감옥에서는 종종 담배가 화폐 역할을 한다. 물론 오늘날 거시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화폐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여기에서는 FRB의 화폐 공급량 또는 통화량에 대한 정의를 따르고자 한다. 화폐의 가장 일반적인 척도는 M1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1) 은행 밖, 즉 시중에서 유통되는 통화량과 (2) 시중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당좌 예금, 즉 요구불 예금 형태로 되어 있는 자금량을 말한다.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은 화폐로 간주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화폐 공급량의 척도(M2)는 저축성 예금과 상호 기금 또는 투자 신탁 같은 덜 유동적인 자산도 포함한다.
3. 부는 그것이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으로 측정되지 숫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4. 적정 화폐 공급량 또는 수준이란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생산된 모든 상품을 구매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 없이 완전 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문제를 간과한다. 그렇다면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을 위해 유통되어야 하는 통화의 양은 얼마나 되어야 할까?
5. 통화 조작으로 경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고 위험한 도약을거쳐야 한다. 첫 번째 도약은 FRB가 화폐 공급량을 늘릴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이불 밑에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케인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 돈을 지출한다고 하더라도, 실물 자산보다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 자산을 구입하는 데 지출할 수 있다. 이것은 금리를 낮출 것이다. 기업이나 가계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그 돈으로 재화와 용역을 구입할 때라야 GDP가 상승한다. 이것이 두 번째 도약이다. 이렇게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두 가지 도약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통화주의자들이 골짜기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
이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걸음 역시 길고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가 과열 현상을 보이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FRB가 화폐 공급량을 줄인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수중에 돈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그들이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금융 자산을 매각한다고 할 경우, 이것은 금리만 올릴 뿐이다. 즉, 시중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은 올라간 금리에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금리가 오르기 전에 중요한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하자. 그런데 금리가 올랐다고 이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는 없다. 기업의 투자 결정이란 금리에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GDP는 계속해서 상승할 수 있다. 다시 말해, FRB의 의도와는 반대로 과열 경기는 계속될 수 있다.
요약하면, 통화 정책에 대한 케인스주의적 비판은 (1) 화폐의 유통속도 또는 화폐 수요가 변덕스러울 때, (2) 돈을 빌려 쓰는 사람들이 금리에 개의치 않을 때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6. 그렇다면 프리드먼의 핵심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소비 또는 소비 행태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프리드먼과 모딜리아니가 옳다면, 정부의 임시방편적인 정책은 민간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7. 프랑코 모딜리아니와 폴 새뮤얼슨에게 화폐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납득시킨 통화주의자들은 1981년에 작곡가 조지 거슈인이 만든 <최후에 웃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노래를 합창했다. 그러나 채 몇 소절을 부르기도 전에 통화주의자들은 합창을 중단해야 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을 압박해 무리한 통화정책을 폈다. 화폐 공급량을 줄이고 금리 상상은 무시했다. 약발은 바로 먹혔다. 1980년에 12퍼센트 이상이었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1982년에 4퍼센트 아래로 눈에 띄게 떨어졌다. 처음에 경제학자들은 화폐가 그렇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프리드먼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됐다. 바로 심각한 경기 침체가 뒤따른 것이다. 먼저 통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생산량과 물가에 같이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10퍼센트까지 치솟았고, 1983년에야 겨우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8. 프리드먼은 1962년 후반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제정되었지만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복지 제도를 대체할 '역소득세(저소득자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를 제안했다. 그의 이런 제안은 오늘날 근로소득보전세제의 기틀이 되었다.
[제임스 뷰캐넌]
1. 뷰캐넌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항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위대한 하층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친구들조차도 뷰캐넌이 그렇게 살가운 친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엄격한 성격과 평소 그가 페리에를 고집하는 풍류 도락가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혐오감에 비춰볼 때, 뷰캐넌이 품위 있고 점잔빼기 좋아하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와 한 방에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2. 공공선택학파의 주요 논지는 매우 간단하다. 즉, 사업자가 이기적이라면, 정부의 관려들 역시 '정치적 사업가들'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이다. 사업가들이 이윤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정치적 사업가들은 무엇을 가장 극대화하고 싶어 할까? 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권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그것에 기초해 모델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정부의 행동에 대해서도 인간의 행동에 대해 했던 것처럼 똑같이 연구하고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3. 맨커 올슨은 사회의 효율성을 빨아먹고자 하는 체계적인 동기가 조합들, 협회들, 또는 기업들 같은 특수 이익 집단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4. 어떤 하나의 동기에서 똘똘 뭉친 이익 집단들은 국가 차원의 경제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결과에서 사소한 몫을 가져가는 개별 소비자들의 이해관계는 철저히 짓밟는다.
5. 제임스 뷰캐넌이 정치인들을 비방하고 헐뜯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그는 정치가들이 위선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 나섰다. 그는 현실적으로 이 문제가 의원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적인 요소가 관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뷰캐넌은 정치 체제가 예산 적자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다음과 같은 교훈을 되새기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해보자. 케인스에 따르면, 경기 호황기에는 고용과 세수가 증가해 흑자 예산을 기록할 수 있고, 반면 경기 침체기에는 고용과 세수가 줄어 적자 예산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 호황기와 경기 침체기라고 하는 경기 순환을 거치다보면 정부 예산은 대체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 뷰캐넌은 케이스 사망 이후 지난 40년 동안 경기가 좋았을 때에도 왜 정부 예산은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추궁한다. 의외로 해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간단하다. 제레미 벤담으로 되돌아가보자. 정치인들은 자신의 유권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들은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 정부의 각종 민생 정책들은 즐거움을 안겨주지만, 세금만큼은 고통을 안겨준다.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뽑아준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추측해보자. 간단하다. 정부 지출은 높이고 세금은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산 적자를 의미한다.
6.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서명했는데, 이 조약은 회원국들이 자국의 예산 적자를 줄여야 하는 의무 조항을 두고 있었으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기존 회원국들은 새로운 단일 통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었다.
7.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공공선택할파를 회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공공선택학파에 가장 비판적인 논자들조차 다음과 같은 이 학파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인정한다. 정부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경제적으로 신중한 정책을 취할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합리적 기대이론학파]
1.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뭔가를 잃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고, 떄로는 사소한 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주식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이 약간 손실을 입었다고 해서 바로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다. 이런 반응은 주식 전문가들이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더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자신들으 보유한 주식, 주택, 직장에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2. 의사 결정 문제는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공동 연구 분야의 하나였다. 두 사람은 '전망 이론'이라는 획기적인 이론을 수립했는데, 이것은 불확실한 조건에서 이뤄지는 의사 결정에 관한 이론으로 전통적인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행동을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보험 계약서에는 선뜻 서명하면서도 몇 푼 안되는 할인 혜택을 받으러 멀리 떨어져 있는 할인점까지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 행동, 한편 값이 비싼 상품을 구입하는 데는 망설이면서도 평생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달갑지 않은 뉴스를 접하고도 소비 규모를 줄이는 일에는 인색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의 행동을 실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위험이 수반되는 일련의 의사 결정을 할 때 전통적인 기대 효용 이론과는 달리 손익의 비중과 확률을 다르게 산정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비록 기대 손익의 크기가 같더라도 기대 이익에 따르는 기쁨보다는 손실에 따르는 괴로움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3. 2006년에 미국 의회는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에 근거해 기업들이 손쉽게 401k에 자동 가입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401k에 선택 가입을 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자격 조건을 충족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자의에 의해 탈퇴하지 않는 이상 401k에 자동으로 가입된다. 합리적 기대이론가들이 관성, 즉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정 기간 지속되는 인식이나 습관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반면, 행동경제학자들은 관성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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