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지도 않고 가장 부유한 것도 아니라면 어째서 그토록 긍정적인 자아상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실은 긍정성이 실제 상태나 기분이 아니라, 세상을 설명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이데올로기의 일부라는 것이 이 물음의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데올로기란 '긍정적 사고'이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려고만 한다면, 시련에서 전화위복의 계기를 찾으려고만 한다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는 낙천주의이지, 희망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희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 상태이자 갈망이다. 반면 낙천주의는 인지 상태이며 의식적인 기대이므로 누구든 수련을 통해 개발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에 담긴 두 번째 의미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2. 그런데 이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불안이 놓여 있다. 긍정적 사고가 올바른 것이어서 모든 일이 좋아질 것이고, 우주가 행복과 충만함으로 향하고 있다면 굳이 긍정적 사고 훈련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저절로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해진다. 긍정적 사고를 위한 훈련은 수많은 모순적인 증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긍정적 사고 훈련의 교사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런 훈련에 '자기 최면' '마인드 컨트롤' '생각 조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는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없는 노력, 곧 고의적인 자기기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참으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 이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의 운명과 화해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통제하거나 검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긍정적 사고는 개인 및 국가 차원의 성공과 결부된 미국적 행동 양식의 정수이지만 그 근원에 놓인 것은 무시무시한 불안감이다.
3. 그렇다고 해도 긍정적인 사고가 나쁠 것은 없고, 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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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암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은 감정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끔찍한 비용을 강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긍정적 사고는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부정하고 쾌활함의 분칠 아래 묻어 두도록 요구한다.
4. 긍정적 사고는 널리 확산된 문화적 합의 중 하나라는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세력을 넓히고 있다. 긍정적 사고에는 이론적 지도자와 대변인, 전도사, 판매원이 존재한다. 자기계발서 저자와 동기 유발 강사, 코치, 트레이너가 그들이다.
5. 그들은 자기가 들었던 강연의 내용, 건강과 부를 얻는 데 유일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 속에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물질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태도를 바로잡고, 감정의 반응을 수정하고, 자신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자기를 향상시키는 다른 방법, 예컨대 교육을 통해 어려운 신기술을 습득한다거나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회 변혁에 나서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까? 하지만 긍정적 사고에서는 모든 도전이 내면적인 것이며 의지를 통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기계에서 새로 찍혀 나온 강사들이 앞으로 만날 청중에게 강연할 내용을 요약하면 분명히 이런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 역시도 한때는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자신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성공의 열쇠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십시오!" 그것을 보고 청중의 일부는 결의를 다지면서 명랑 교단의 새로운 선교사로 나설 것이다.
6.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제는 성공을 이끄는 자기실현적인 예언이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고용주나 긍정적 사고를 믿는 동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의미심장한 실패로 이어진다는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7. 왜 미국에서는 이토록 많은 사람이 유례없이 쾌활하고 자기만족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면 미국의 역사 속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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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이주자들이 뉴잉글랜드로 들여 온 칼뱅주의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우울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자 앤 더글러스가 썼든, 칼뱅주의의 신은 '전적으로 무지막지한' 신이었으며 자신의 창조물에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드러내는 전능한 존재였다. 그 신의 천국은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 천국에 들어갈 특권이 있는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숙명적으로 선택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가슴속에 깃들어 있는 가증스러움'을 끊임없이 검열하여 명확한 저주의 징표인 죄 많은 생각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칼뱅주의는 이러한 자기반성 과업에 오직 한 가지 형태의 위안만 제공했는데 그것 또한 이름만 다른 고역으로 청소하고, 작물을 키우고, 바느질을 하고, 농장을 짓고,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육체적 혹은 정신적 형태의 노동이 아닌 모든 것은, 그러니까 게으름을 피운다든지 쾌락을 찾는 것은 비열한 죄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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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문제의 유일한 해독제는 노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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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주의는 개인에게 안도감을 주지는 못했지만 모임, 그러니까 교회 신도들의 기분은 고양시켜 주었다.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는 없지만 엄격한 정신 수양을 통해 사회적 실체에 소속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정화되지 않고, 순화되지 않고,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을 위에 둘 수 있었다.
8. 요즘에는 낙담의 늪에 빠져 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긍정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것이 하나의 완전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산업의 상품, 곧 '동기 유발'이 다양한 가격대로 나와 있다.
9. 기업은 본래 특정 과제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19세기에 운하나 철로 건설을 위해 면허장을 발부받아 특정한 사업을 수행했던 것이 기업의 유래다. '기업'이란 단어는 지금도 단순히 주주를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을 넘어 집단 과제와 관련된 조직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전후 시기의 기업들은 생산하는 제품 및 전반적인 사회 기여라는 관점에서 정체성을 규정했다.
10. 많은 기독교 관련 웹사이트에는 오스틴을 비롯한 긍정신학 전파자들을 이단자나 가짜 기독교인으로 비난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사탄과 한패'라는 표현까지 있다. 이런 비판은 때로 매우 전문적인 신학의 기반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누구의 눈에도 이유가 명백해 보이는 것일이다. 그들은 재물을 하느님의 상위에 놓는다. 그들은 죄의 실체를 무시한다. 그들은 하느님을 인간의 종으로 격하시킨다. 영적으로 요구되는 종교적 전통을 하찮게 여긴다 등등. 2007년 오스틴을 취재한 방송 <60분>에서 신한 교수인 마이클 호턴 목사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기독교의 강력한 주제인 죄, 고통, 구원을 빼 버린 오스틴의 세계관을 '솜사탕 복음'이라고 일축했다. 또 긍정신학의 핵심, 곧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개념도 이단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종교를 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 관한 것으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11. 교회의 시장조사 결과, 사람들은 죄에 관한 장광설을 듣고 어떤 식으로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주일에 고작 하루 직장이나 빨래 같은 잡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런 귀중한 날의 한 시간을 지옥의 업화가 닥쳐오고 있다는 경고를 받는 데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초대형 교회와 그런 위치를 꿈꾸는 교회들에게는 요구가 많은 기독교의 핵심 교의를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긍정적 사고였다.
12. 1950년대 지식인들은 노먼 빈센트 필을 조롱했고, 그로부터 40년 뒤의 학자들은 필의 계승자들을 하루살이 대중문화 현상이나 싸구려 행상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셀리그먼이 조종간을 잡자 존경받는 박사급 심리학자들이 낙천성 및 행복감을 건강과 직업의 성공 같은 바람직한 결과와 연결시킨 학문적 저작물을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중 상당수는 신생 행복 연구 저널에 게재되었다.
13. 사실이 그렇다. 인간의 행복에서 환경 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면 정책은 주변적인 요소가 된다. 더 좋은 직장과 학교, 안전한 주거 환경, 보편적인 의료보장 등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굳이 나서서 그런 요구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회 게혁가, 정치 활동가, 개혁 성향의 선출 관료들은 그동한 절실했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다. 행복 결정 요인인 S, 곧 개인적 행복의 '세트 포인트'를 올리기 위해 유전자 요법을 들먹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결국 손댈 여지가 있는 것은 개인의 자발적인 노력을 뜻하는 V뿐이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이 이어진 끝에 바통은 '낙천성 훈련' 트레이너와 긍정심리학자, 대중적인 긍정적인 사고 주창자에게로 넘어갔다.
14. 미국인들은 독일인, 캐나다인, 핀란드인, 프랑스인, 스웨던인, 모르웨이인, 덴마크인에 비해 계층의 상향 이동 가능성이 더 낮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라는, 기분을 풀어 주는 상쾌한 약을 복용하는 데 힘입어 신화는 강화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지난 2006년에 비아냥을 약간 섞어 이렇게 진단했다. "기회와 상향 이동 가능성에 강한 믿음은 미국인들이 불평등을 잘 감내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조사 대상 미국인의 대다수는 장래에 자신이 평균 소득 이상을 벌 것이라고 믿고 있다(이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15. 2008년 말, 보기 드문 경제 비관론자 가운데 한 사람인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어째서 아무도 그 보든 것이 사실은 거대한 폰지 사기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는가?"라는 수사적 물음을 던진 뒤 "누구도 잔치의 흥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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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는 또 우리가 왜 그렇게 돈을 펑펑 쓰면서 저축은 안 했는지도 설명해 준다. ... 우리가 빚더미에 올라앉아서도 계속 돈을 써 댄 것은 우리의 낙천성과 관련이 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곳에 돈을 끄면서 거리낌 없이 카드 빚을 쌓아 가고, 집에 2차 모기지 계약을 설정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대출 이율이 상승하는 모기지 계약을 맺게 된 핵심에는 이 낙천주의 정신이 놓여 있었다. 긍정적 사고 이데올로기는 낙천성과 그에 수반되는 권리 의식을 열심히 부채질했다.
16. 벼락부자의 꿈이 산산조각 나면서 담보권 실행으로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지만, 긍정적 사고의 전파자들은 그들과 똑같이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 사고를 전파하려는 노력에 힘을 더 쏟는 듯했다. 긍정적 사고란 본래 역경 속에서 더 번성하는 법이다. 대공황이 자기기만의 고전인 나폴레온 힐의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낳았던 것이 좋은 예다.
17. 그렇지만 긍정적 사고의 대안이 절망은 아니다. 실제로 부정적 사고는 긍정적인 사고만큼이나 망상이 될 수 있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뇌를 외부로 투사하며, 모든 일에서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고, 그런 왜곡된 기대를 통해 고뇌를 부풀린다.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 모두 감정과 지각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 대신 환상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거나, 침체로 빠져드는 익숙한 신경 경로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경향에 대한 대안은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기감정과 환상으로 채색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위험과 기회가, 죽음의 확실성뿐 아니라 커다란 행복도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18. 지금까지 이루어진 인류의 지적 진보는 우리가 사물을 자기 감정의 투사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장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파악하려 했던 오랜 투쟁의 결과다. 천둥은 하늘의 분노가 아니고 질병은 신이 내리는 벌이 아니며, 마법이 사고나 죽음을 초래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가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그것은 이 세계가 인간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인과관계, 개연성, 우연이라는 자체의 알고리즘에 의해 전개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는 과정이었다.
긍정적 사고가 영향력을 발휘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현실주의라는 관념이 오히려 색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의 심장부인 미국에서도 현실주의를 고수하는 완강한 흐름은 기만의 세월 속에서 이어져 왔다. 몹시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위험이 명백할 때, 우리는 그런 위험을 인식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리라고 신뢰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의지한다.
19. 주의 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 우리 자신이 처한 실제 환경을 도외시하면서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긍정적 사고는 그런 외부 요인이 우리 내부의 상태, 태도, 기분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치들과 권위자들은 실제 세계의 문제를 실패에 대한 변명 거리로 치부해 버렸고, 긍정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행복 방정식에서 환경 변수인 C가 갖는 비중을 가장 낮게 잡았다.
20.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일상적인 장애물은 빈곤이다. 행복에 관한 그간의 조사 결과들을 신뢰한다 치면, 행복도가 높은 곳은 예외 없이 부유한 나라들이다. ... 한 국가 안에서도 부유한 사람일수록 행복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1.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현실적이며,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 제방을 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치료제를 찾아내고, 긴급 구조 요원들을 강화하자! 이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수는 없으며 어쩌면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는 내 나름의 '비법'을 공개하며 이 책을 맺으려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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