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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노트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리히 프롬)

by Say_Young 2021. 6. 25.

1.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해서 죽겠다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에 시달린다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할 수 없어 괴롭다고, 술을 마시고 싶어 미치겠다고, 직장이 불만이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허용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질병의 표현 형태로 가능한 온갖 것들을 들먹인다.

 

2. 인간은 자신을, 자신의 확신,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자기 고유의 것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타인들과 구분되지 않을 때 자신과 일치한다고 느낀다. 타인들과 순응하지 못하면 끔찍한 고통이 닥칠 것이며 집단에서 추방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 느낀다. 

 

3. 인간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앞에서 말했던 그 ‘본질적 속성’들은 ‘인간의 본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의 이미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원칙일 뿐 아니라 능력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과 사랑의 능력이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과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진술하는 능력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인간 본성의 기본 요인이다. 

 

4. 인간을 자기 목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인간을 자연의 다른 모든 사물처럼 다른 목적 - 국가, 가족, 소유, 권력 등 - 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구분해야 한다.

 

5.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자유로운지, 얼마나 자유로운지의 문제이다.

 

6. 우리의 일상에는 우리 인격의 정체성을 앗아가는 위험이 있다. 개별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부인 공동체의 공동생활은 우리에게서 점점 자유와 책임감을 앗아간다.

 

7. 현대인들은 인간과 인간의 실질적 소통 가능성에 진지하게 의문을 품는다. 주관적으로는 타인을 향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향해야 한다는 키르케고르의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았던 하이데거는 인간과 인간의 거리를 거듭 강조하였다. 사르트르는 소통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작품 속 한 인물의 입을 벌려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말로 ‘사랑’을 ‘사랑받을 것이라는 기대'라고 생각하면 “지옥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8. 일단 우리는 자발성을 갖춘 혹은 갖추었던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사고, 감정, 행동은 자동인형의 표현이 아니라 자아의 표현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예술가이다. 실제로 예술가는 자발적으로 자산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정의를 인정한다면 - 발자크의 예술의 정의가 그랬다 - 몇몇 철학자와 학자들 역시 예술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철학자 및 학자들과 구식 사진사와 창조적인 화가만큼이나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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